공연 정보 (Source: wiener-staatsoper.at)
발레는 작년 말 <호두까기 인형> 이후로 두 번째이다.
뮤지컬이나 연극보다 다소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처음 본 공연이었다.
하지만 공연 시작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나는 배우들의 표정, 몸동작, 스토리, 음악, 각종 시각 요소들에 매료되고 말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대사나 노래가 없는 발레도 그 특유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나는 발레를 배워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분명히 "발레"라는 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예쁜 춤 선과 날렵한 동작을 위해 고단히 마른 몸매를 유지했을 무용수들이 발 끝으로 무대를 지탱하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예술이자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체로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우선적으로 보긴 하지만, 가끔은 '편식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또는 단순히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예매 버튼을 클릭하기도 한다.
이 작곡가나 음악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오페라와는 또다른 클래식함을 느끼고 싶어서 보기로 결심했다.
입석 표를 주고 살까 하다가 마침 극장 홈페이지에 싼 착석 표가 남아있어서 (시야제한석이지만) 한번 구매해봤다.
나름 온라인 예매라고 저번처럼 대충 프린터로 뽑은 것 같은 흑백 용지가 아니라 빳빳하고 컬러로 된 티켓을 받았다.
무엇보다 입석 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앞에 가서 찍었다
과연 착석 좌석은 달랐다.
모든 칸마다 하나의 방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데 들어가면 거울도 있고, 옆에 옷걸이가 있어서 옷을 걸 수도 있었다.
맨 앞 줄에 의자 세 개, 두 번째 줄에 의자 두 개, 마지막 줄에 의자 한 개가 있었다.
그 마지막 줄에 내가 앉게 되었는데, 맨 앞 줄의 의자와는 다르게 두 번째, 세 번째 줄의 의자에는 발판이 있었다.
(그 용도는 공연이 시작한 직후 바로 깨달았지만)
내가 맨 앞에 앉았다면 보였을 무대와 객석의 뷰.
무대보다는 오케스트라가 잘 보이고, 객석 맨 뒤에 입석 표를 구매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게 보인다.
공연이 시작하고, 나는 발판에 올라서지 않으면 무대를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제한이 아니라 시야방해석이었어..)
심지어 무대의 절반이 가려져 무용수들이 내 시야에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점프하면 사라졌다 왼쪽으로 점프하면 다시 보이는?)
입석 표와 다른 점은 옷걸이에 옷을 걸 수 있는 것과 옆 사람에 치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바닥이 아닌 발판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다음은 wiener-staatsoper.at 및 classicworld.at에 있는 작품 해설을 번역, 편집한 것이다.
Source: wiener-staatsoper.at
<Le Pavillon d' Armide (아르미드의 관)>는 20세기 초 발레 역사를 통틀어 높은 평을 얻고 있는 미하일 포킨(Michel Fokine)의 안무로, 190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작품은 1909년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Diaghilev's Ballets Russes)에 의해 바슬라프 니진스키 (Vaslav Nijinsky)를 메인 댄서로 하여 파리의 샤틀레 극장에서 다시 부활했다. 파리에서의 첫 번째 공연이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나,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는 함부르크에서 니진스키에게 경의를 표시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자신의 버전을 새로 발표했다.
Source: wiener-staatsoper.at
<Le Sacre du Printemps (봄의 제전)>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i)의 음악에 맞춰 니진스키가 안무를 짠 것으로,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노이마이어의 버전은 1972년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을 위해 창작되었으며, 무용수들의 피부색과 같은 의상은 원작에 더욱 강렬함을 더한다. 발레 역사상 가장 독특하면서도 악명 높은 작품으로서, 니진스키는 발레의 근본에 혁명을 일으키고, 그 숭고한 우아미를 광기에 찬 이교도 의식으로 대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원작의 안무를 먼저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두 작품 모두 각색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네이버든 구글이든 검색을 해도 작품 해설이나 줄거리가 잘 안 나와서 답답했다. (이 작품에 대해 잘 아시는 분? :()
첫 번째 공연인 <아르미드의 관>은 중심 인물 몇 명이 번갈아 가며 우아한 동작을 뽐내는 전반적으로 세련된 느낌의 발레 공연이었다.
아름다운 배경과 소품, 그리고 춤동작들은 내가 알고 있던 전통적인 발레의 느낌을 주면서도 정장과 발레복의 조화로 인해 현대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마지막에 여자+여자 또는 여자+남자의 조합이 아니라 남자+남자의 조합으로 안무를 선보일 때가 제일 흥미로웠다.
내 앞에 앉아 계시던 분은 노부부셨는데, 공연 중간 중간 남편 분께서 졸 때마다 부인 분이 깨우시는 게 보였다. (조금 웃겼음)
인터미션 후 두 번째 공연 <Le Sacre>가 시작되었다. (봄의 제전을 각색한 것인데 봄의 제전으로 번역해야 할지 아니면 대관식 혹은 제전으로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작부터가 강렬했다.
벽에 걸려 울긋불긋한 그림은 온데간데 없고 껌껌한, 혹은 새빨한 배경과 조명만이 자리했다.
헤어스타일은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누드톤 의상을 입고 등장했을 때는 '옷을 입은 건가? 안 입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안무도 일반적으로 내가 아는 발 끝을 세우면서 점프하는 그런 우아한 동작은 없었다. (발레 동작 이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므로)
무용수들은 떼거지로 우르르 몰려나와 점프를 하거나 구르고, 팔을 폈다 접었다 하는 온갖 기괴한 모습을 보였다.
단체로 뛸 때는 무대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고, 구를 때는 날개가 퍼덕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원시부족의 종교의식이나 짐승의 인간화를 표현한 듯한 느낌이었다.
'첫 번째 공연은 두 번째 공연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아르미드의 관>은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건 눈을 뗄 수도 없는 진기명기였다.
무용수가 오른쪽으로 가서 무대가 보이지 않을 때는 (시야제한 좌석의 비애) 그 밑에 오케스트라를 더 집중해서 보았는데, <아르미드의 관>에서 보았던 딩가링 하는 아름다운 하프 선율은 사라지고 타악기와 빠르고 거친 현악기의 움직임이 더 눈에 띄었다.
왜 니진스키가 이 안무를 처음 창작했을 때 발레의 혁명이라고 불리었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일반적으로 '발레'하면 떠오르는 것들과는 많이 벗어나있지만, 확실히 이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예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충격적이지만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피카소의 입체주의 미술과 닮았다고 하면 이 느낌이 설명이 될까?
공연이 끝나고 무용수들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한 다음 막혀 있던 것 같은 답답함을 긴 호흡으로 뱉어냈다.
당분간 소리 없이 포효하는 듯한 그 몸동작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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