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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6일은 유럽 최대의 공휴일인 부활절 (Easter)이다.

 

우리나라의 설이나 추석만큼 큰 명절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기관 및 상점들이 긴 휴일을 가진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정해진 부활절 휴가에 공강까지 더해져 나 또한 긴 공백기가 생겼다.

 

"교환학생의 묘미는 바로 여행이지!" 라며 나, I, L은 이 기간 동안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오기로 했다. (장고는 아쉽게도 이미 다녀온 지역이라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갔다.)

 

 

#DAY 1

 


왕복 교통편은 비행기를 이용했다.

 

라이언 에어 (Ryan Air)에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팔았지만 비엔나 공항에서 출발하는 편이 없어서 브라티슬라바 공항으로 가야했다.

 

비엔나 → 브라티슬라바 (버스) → 파리 (비행기) → 파리 시내 (버스)

 

의 동선으로, 오후 12시 35분에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시내에 도착하니 거의 밤 9시가 다 되어갔다.

 

 

파리 입성!!!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건물인데, 비엔나에는 거의 없는 현대적인 양식이 새로웠다.

 

'역시 서유럽 국가답구나!' 하는 느낌?

 

 

지하철 표지판도 할로윈 같고 신비롭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바로 숙소로 가면 아쉬우니까 루브르 박물관의 야경이라도 보고 가기로 했다.

 

 

 

이름만 들어봤던 그 루브르 박물관을 드디어 실물로 영접했다.

 

피라미드 모양 조형물이 조명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다들 우리처럼 문 닫은 박물관에 야경이라도 보러 온 건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날이 선선해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안녕, 다시 올게 루브르' 하는 작별 인사와 함께 우리는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비엔나의 신호등을 보고 난 후로 왠지 신호등에 집착하는 나.

 

메인 광장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북적북적했고 문을 연 가게도 꽤 많았다.

 

또 유색인종 (특히 흑인)이 많다는 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같은 유럽인데 여긴 완전히 다른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ibis Budget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파리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구 (district)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주변 공기도 좀 서늘하고 숙소 앞에 양아치 같이 생긴 시끄러운 사람도 무척 많았던 것 같은 기억이..

 

하지만 리셉션도 친절했고 (말할 때 술 냄새가 났지만), 로비도 넓고 깨끗했던 나름 괜찮은 숙소였다고 생각한다.

 

 

 

더블베드 하나와 벙커베드 하나, Private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셋이 지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구조!

 

비록 말리려고 침대 난간에 걸어놓은 내 수건까지 가져가셨지만 (같은 흰색이라 착각하신 듯 하다) 다음날이 되면 수건도 바꿔주고 쓰레기통도 비워주신다.

 

버스와 비행기에서 내내 잤지만, 내일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다니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DAY 2

 

 

 

숙소에서 나와 지하철역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빵집에 들렀다.

 

프랑스어로 Croque-Monsieur라고 적혀 있었는데 어떻게 읽는지 몰라서 빵을 가리키면서 "크로크 몬슈? (갸웃) 무슈? 주세요" 했더니 내 발음이 웃겼는지 주인 분께서 피식 하셨다.

 

살짝 느끼했지만 전반적으로 치즈가 입에서 살살 녹는 달콤한 맛이었다. (맛있어서 다음날 또 사 먹음)

 

베르사유 궁전을 가는 길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역무원 분이 지금 노선이 운행을 중단해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꽤나 불편했지만 친절하게 가는 방법이 적힌 A4용지 지도도 받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 중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

 

바로 I의 지갑이 도난당할 뻔한 것이다.

 

내가 지하철에 서서 봉을 잡고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갇힌 I가 너무 불편해보여서 "I, are you okay?"라고 물었고, I는 "Yes, I'm okay."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I가 "My wallet!"하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그 쪽을 쳐다보니 I가 토끼눈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바닥에 지갑과 휴대폰이 떨어졌고, (둘 다 가져가려고 한 대범함) 근처에 서 계시던 중국 아주머니께서 "내가 방금 내린 여자가 훔치려고 한 거 봤어!"라고 하셨다.

 

I에 의하면, 누가 옆에서 자꾸 미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손도 꼼짝할 수 없더란다.

 

갑자기 누가 지갑을 꺼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I의 가방은 옆으로 길게 매는 작은 가방으로, 자석이 달려 있어 쉽게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소리를 치니까 당황해서 지갑을 떨어뜨리고 나간 것 같다고.

 

하긴 자기가 안 훔쳤으면 어딜 만지냐며, 내가 안 훔쳤다고 변명했을 텐데 I가 옷을 더듬거려도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다음 역에 빨리 도착했어도 I의 지갑은 도둑 맞았을 것이다.

 

(나중에 전해들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장고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실제로 지갑을 도둑 맞았다는 것이다. 불쌍한 우리 장고...)

 

나는 유럽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그런 일이 정말로 우리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모두 패닉 상태에 빠져 프랑스가 이렇게 위험한 곳인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 더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그 후로 우리는 내내 가방을 부여잡고 지하철을 탔다.)

 

아무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 궁전 건축의 대표적 예로, 루이 14세(1643~1715년 재위)는 우의에 질린 나머지 '젊음이 곳곳에서 발산하는' 공간을 원했는데, 그러한 취향과 보다 가벼운 스타일이 잘 반영되어 있다. 베르사유는 원래 프랑스 왕실의 샤토로, 1682년부터 1789년까지는 수천 명의 귀족, 조신, 공무원 등이 머무르던 곳이었다.

 

그 웅장한 규모로 유명한 베르사유의 한가운데에는 접견용 홀들이 있고, 정원에는 1,400개의 분수가 있다. 1624년 루이 13세를 위한 간소한 정원으로 시작한 샤토 드 베르사유는 증축 공사를 거쳐 점점 커졌고, '태양왕' 루이 14세 때 드라마틱할 정도로 확장되었다. (Source: 두산백과-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1)

 

우리도 나름 일찍 간다고 갔는데 생각보다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다들 부활절 휴가를 파리로 온 줄 았았다.

 

어쨌든 입장은 해야 하니 뮤지엄 패스를 사러 인포데스크에 갔는데 학생이면 교환학생 비자나 학생증으로 (에펠탑 제외)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정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티켓을 사야해서 8유로를 내고 구매했지만.

 

 

 

 

 

입장하자마자 와! 하고 탄성이 절로 났다.

 

정원이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도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정원은 비교가 안 될 만큼 훨씬 넓은데도 정돈이 잘 되어있고 잔디 모양도 기하학적으로 멋있게 깎아 놓았다.

 

사진 하나에 담기는 땅도 운동장만큼 넓은데 실제 정원의 크기는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진다.

 

궁전까지 다 포함하면 하루종일 걸어야 다 둘러볼까말까 한 정도.

 

이런 걸 두고 바로 '호화로움'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날씨도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햇볕도 쨍쨍한 여행하기 최적의 날씨!

 

너무 넓어 걷다 지친 우리는 대운하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을 보고 "재밌겠다! 우리도 타자" 해서 보트를 타게 되었다.

 

다리가 저리도록 내내 걷다가 보트에 앉아 물과 나무와 자연을 바라보니 세상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날이 더워 먹은 아이스크림.

 

이제 정원은 실컷 구경했으니 궁전을 가볼까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그냥 다른 곳을 가기로 했다.

 

 

안내판에 적혀 있는 길을 따라, 우리는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으로 향했다.

 

루이 14세가 애인이었던 매트농 부인을 위해 지은 궁전으로, 애첩을 비롯한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궁전 격식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Source: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모두 각기 다른 테마의 색으로 치장되어진 방은, 역시나 왕을 위한 공간인 만큼 화려하고 호화스러웠다.

 

과거에도 이렇게 세련되고 정교한 인테리어를 만들고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홀을 따라 걷다 보니 영화 <모차르트>에 나오는 흰색 가발을 쓴 격식 있는 차림의 귀족들이 떠올랐다.

 

몇 백 년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 탁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을 공간에 시간이 흘러 우리가 관광하러 왔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파리의 최대 명물이자 랜드마크,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사이요궁에 올라갔다.

 

에펠탑은 센 강 서쪽 강변에 드넓게 펼쳐진 샹 드 마르스 공원 (Champ de Mars) 끄트머리에 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구스타브 에펠 (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의 설계로 세워진 탑이다. 에펠탑 건축 당시에는 '철골 덩어리'라며 모파상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완공된 후에는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오늘날에는 파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에펠탑은 20년 기한이 끝나는 1909년에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그대로 남아 무전탑 및 송신탑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회전식 표지등이 설치되어, 오늘날에는 파리의 야경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빛의 탑'으로도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Source: 네이버 지식백과 - 저스트고 관광지)

 

옛날에 페이스북에서 어떤 선배가 교환학생 갔을 때 찍은 에펠탑 사진을 보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 현장에 내가 와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올 만큼 크고 높고 아름다운 철근 건축물이었다.

 

 

타이타닉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절절하게 연주하시던 버스커 분.

 

음악에 맞춰 왈츠를 낭만적인 커플 한 쌍도 있었다.

 

 

 

파리의 물가는 놀라웠다.

 

비엔나의 외식 물가가 평균 15유로 선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는 구글맵에 친 레스토랑 음식의 평균 가격이 30유로, 60유로, 80유로까지 하는 곳이 부지기수였다.

 

겨우 겨우 찾아간 그나마 싸고 괜찮아 보이던 레스토랑 Les Antiquaires.

 

 

 

나는 오리 가슴살을 주문했다.

 

한 입 먹어보고 역시 괜히 파리 음식이 유명한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쫄깃쫄깃한 오리 고기와 신 맛이 감도는 달짝찌근하고 걸쭉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 그 맛은 말 그대로 일품!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다시 에펠탑의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잠시 세느강 앞에 멈춰 섰다.

 

전에 방문했던 프라하나 그라츠처럼 양쪽에 울긋불긋한 지붕은 없었지만, 멀리 보이는 대관람차와 저녁 노을이 어우러져 훨씬 감성적이었다.

 

이 강과 다리가 도시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프라하보다 더 좋았다.

 

 

에펠탑을 낮에만 보는 건 또 서운하니 밤에도 봐줘야 한다며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직접 가까이 다가갔는데 웬만한 고층 빌딩 못지않게 높았다.

 

5년 전만 해도 파리에 와서 에펠탑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하며 추억에 젖은 시간이었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