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남은 부활절 휴가 동안 독일에 교환학생을 가 있는 동기와 같이 부다페스트에 여행가기로 했다.
하지만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였기 때문에 피로가 안 풀린 것도 있고, 비엔나에 여행 온 다른 친구와 만나 늦게까지 같이 있게 된 바람에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분명 전날 밤에 '내일 짐 정리도 하고, 씻고, 밥 먹고 하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되더라' 하고 생각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정작 알람을 맞춘 기억이 없다는.. (삑 변명입니다)
일어나자마자 속으로 '망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해서 석고대죄를 했다.
안 그래도 짧은 1박 2일이라 더 볼거리가 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약속을 어겨 친구를 곤란하게 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후 환승까지 포함해 지하철 티켓 두 장을 끊었는데,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원래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티켓을 끊으면 개찰구 기계에 티켓을 넣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 개찰구가 원래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티켓 샀는데 괜찮겠지' 하며 그냥 지하철에 탑승했다.
하지만 내린 역에서 서 있는 보안관들에게 나는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티켓을 activate 시키지 않아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여행자이며, 10분 전에 이 티켓을 샀으니 한 번만 넘어가 달라고 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우선 내 말을 전혀 듣지를 않았고, 내 여권을 뺏어가다시피 하더니, 여기서 8,000포린트 (약 30유로)를 내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두 배를 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벌금이 터무니없이 비싼 게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내가 정말로 무임승차를 할 생각으로 표를 안 샀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대중교통 이용 안 할거야!" 라며 나는 그 역에서 걸어서 부다성으로 향했다.
(친구와는 저녁 8시에 한 레스토랑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전까지 온천에 있겠다고 했다.)
세체니 다리 (Szecheny lanchid)를 건너 도착한 부다 왕궁.
더 이상 이 도시에서 많은 돈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만 성을 바라보았다.
외벽에 있는 커다란 왕궁의 문장과 올려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 왕궁을 보며 내부는 엄청 넓고 커다랗게 생겼겠구나 하고 짐작했을 뿐이다.
대신 어부의 요새에서 좀 더 시간을 쏟기로 했다.
어부의 요새 (Halaszbastya)는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Source: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이 곳의 건축물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현실이라기보단 동화 속에 나올 법한 무대 같았다고나 할까.
여기서 반나절 동안 사진을 찍는다면 인생샷은 건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행 왔는데 사진이라도 남기자!' 하며 혼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전경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국회의사당을 중심으로 강을 끼고 솟아있는 다양한 크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만들어냈다.
내려오는 길에 또 혼자 사진을 찍다가 중국 분들이 한참 다투는 소리가 들려서 가서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보니 "아, 지금 올라가면 해가 다 져서 못 볼까봐 그러는 거야!"
그것 때문에 서로 옥신각신하셨다는 게 너무 귀여워서 그만 웃음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중국어 잘 한다, 예쁘다, 자기도 산동 지역에서 왔는데 (칭다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더니) 반갑다며 살갑게 대해주시는데 그 때 우울했던 기분이 비로소 풀렸다.
한창 인종차별 문제로 예민해있던 시기에, 다른 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겹게 얘기해주신다는 게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친구와 만나기로 했던 레스토랑 앞에서 만났지만 (친구는 독일의 다른 선배 두 분과 부다페스트에 같이 왔다) 예약이 다다음날까지 차 있는 바람에 근처 다른 곳에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같이 유람선 야경을 보러 갔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솔직히 지금까지 본 야경 중에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될 만큼 멋졌다.
멀리서 황금빛으로 물든 부다 왕궁 및 국회의사당과 함께, 웅장한 세체니 다리와 함께 작은 건물들의 반짝임이 모여 야경만 본다면 매우 번영한 황금 도시 같은 인상을 주었다.
가장 장엄했던 국회의사당의 야경이다.
친구가 대신 가서 체크인도 미리 해주어서 너무 너무 고마웠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음)
숙소에 가기 전에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와서 수다꽃을 피웠다.
이렇게 한국인들끼리 얘기하는 건 진짜 오랜만이었는데, 몇 달 됐다고 그게 더 낯설었다. (하지만 반가웠다는 거!)
#DAY 2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영웅광장 (Heroes' Square)을 방문했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지어진 광장으로, 광장 중앙에는 36m 높이의 기둥이 있는데,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기둥 옆에는 마자르의 7개 부족장들의 동상이 있고, 이 기둥을 기준으로 반원의 형태로 주랑이 2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는 헝가리의 역대 왕과 영웅들이 연대순으로 조각되어 있다. (Source: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
부다페스트에는 생각 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동유럽에 가까워질수록 도시가 따분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부다페스트는 특이한 것도 많고 여행객도 많고 꽤나 활기찬 도시였다.
여행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삼성! (화웨이도 많이 보인다)
괜히 뿌듯해서 한번 찍어보았다.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본 성 이슈트반 대성당도 한번 찍어보고,
친구가 데려간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라츠에서 먹은 오스트리아식 굴라쉬가 너무 맛있어서 굴라쉬의 원조인 헝가리 굴라쉬에 대한 기대도 컸다.
역시 고기는 실패하는 법이 없듯이, 빵에 찍어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수프였다.
메인 요리인 양배추와 달걀 요리는 무난했다.
근처 공원에 들러 산책하다 Langos라는 길거리 음식도 맛보았다.
샤워크림만 올렸는데, 맛은 별로 없었다.
중국에서 먹은 요티아오(油条)와 똑같은데 모양만 다른 맛이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또다른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장미 모양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여행지마다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이 아니겠죠)
눈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할 만큼 예쁜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러나... 나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친구와 나는 부다페스트 여행 후 같이 비엔나에 돌아와서 놀기로 했는데, 그 버스를 놓쳐버린 것이다.
우리 둘 다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있고,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기도 했다. (허탈함만 남을 뿐)
친구는 늦게 가면 비엔나에서 보낼 시간이 짧아져 손해가 컸고, 또 감기기운이 있어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그렇게 하자고 하고 나는 비엔나행 버스를 다시 검색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당장 예약하는 버스는 비싸기 때문에 더 싼 방법을 찾아낸 것이 (이미 난 많은 돈을 썼다! 엉엉)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부다페스트 → 브라티슬라바 → 비엔나를 거쳐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라티슬라바에는 도착한 후에 나는 비엔나에 도착하는 버스가 잘못 예약된 것을 알았다.
분명히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한 것 같은데, 링크를 타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빠른 버스로 바뀌어서 결제된 모양이었다.
문제는 도착한 버스정류장이 큰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동네 버스정류장 같은 작은 정거장이라 와이파이를 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정류장에 부착된 버스 노선도를 살펴보았지만 이건 독일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무슨 언어인지..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때여서, 무섭기도 하고 괜히 모르는 곳에 내리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Flix나 Regiojet 버스를 기다리는 게 그나마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아 무작정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내가 혼자이고 무방비하다는 것을 알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고, 최대한 "나는 이 곳을 잘 아는 사람이다" 하는 당당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버스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Flix 버스가 왔는데, 출발하기 전에 티켓을 사야해서 초스피드로 예약을 진행했다.
기사님께 "지금 티켓 사는 중이라서, 1분만 기다려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게도" 버스에 탑승해 비엔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1. 부다페스트로 가는 버스를 놓쳐서 새로 예약했다.
2. 교통권을 샀는데도 불구하고 activate을 시키지 않아 벌금을 물었다.
3. 비엔나로 가는 버스를 또 놓쳤다.
4. 브라티슬라바에서 비엔나로 가는 버스를 잘못 예약했다.
5. 도착한 정류장에서 와이파이가 안 잡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어 집에 못 갈 뻔했다.
이 중에 한 두가지 정도만 일어났어도 여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 금방 개의치 않아했을 것이다.
내가 부주의했던 것도 사실이나 이렇게까지 한꺼번에 불행이 들이닥칠 수는 없는 것이다. (나한테 왜 그래..)
그 동안 잘못 살았나 되돌아봤고, 한심한 인간이 된 것 같아 속상했다.
재밌는 일도 분명 있었지만, 그렇게 부다페스트는 내 인생에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도시가 되었다...
도전도 중요하고 추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이며, 여행 전에는 철저한 사전조사 및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름대로 교훈을 얻었다면 좋은 경험이지만,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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